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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 같은 하나님

참이신 하느님은 없는 것 같다. 없는 것 같은 것이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얼로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가득하다. 『다석어록』

- 《다석 류영모 명상록》 p.71

다석 류영모 선생이 경험하는 것을 나도 똑같이 경험한다. 그는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을 봤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눈앞에 가득하다. 바울은 만물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유성 갑천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낀다. 집에서도 다르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낀다.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물으면 막연하게 허공을 가리킨다. 그들이 가리키는 허공은 진짜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에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가리키는 것이다. 실제로는 허공에 계시는 하나님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다. 나도 옛날에 그랬고, 신앙심이 아주 좋으신 모친도 그러했고, 아주 친한 친구도 그러했다. 기독교인들에게서 하나님의 실존은 참 모호했다.

깨달음 공부를 하고 눈이 열리자 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본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형상처럼 볼 수는 없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은 아니다. 다석 선생의 말처럼 참이신 하느님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눈이 열린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인식이 된다. 길가의 나무에서도, 날아가는 새에게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도, 물위를 떠다니는 오리에게도, 하늘을 나는 백로에게도, 멀리서 들려오는 공사장의 소음에도, 습지길을 걷는 발바닥의 감촉에도 하나님은 현존한다.

하나님은 사물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 그대로 사물과 함께 자신을 나타내신다. 나는 나무를 본다. 하나님은 나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 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의 형태를 통해서 하나님의 허공성과 영원성이 함께 나타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안에 하나님이 있지 않다. 흔들리는 갈대와 함께 배경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인식된다. 새소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새소리가 생기기 직전의 허공성을 통해서, 새소리가 날 때 그 배경의 영원성을 통해서, 새소리가 사라진 후의 텅 빔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변화하는 것을 통해서 변화하지 않는 영원한 자신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