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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이 나귀를 보는 체험을 했다

맨발로 도솔산을 걷고 있었다. 나는 영원의 한 점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요즘 매일 갑천 옆 습지길과 도솔산을 맨발걷기 하면서 깨달음 공부를 한다. 이곳을 다시 찾은 이후로 공부가 무척 잘 되었다. 깨어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매순간 전체의식(순수의식)으로 눈앞의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4~5시간을 걸었다. 오늘도 도솔산을 깨어서 걸었다. 맨발이다보니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1미터 발앞을 보면서 걸었는데 눈앞의 땅바닥이 계속해서 변화를 일으키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영원의 한 점에 서 있구나!"

영원의 한 점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지금 여기, 찰나의 순간만 있는데 그 한 점은 변화가 없이 영원하다. 그 한 점을 기점으로 시간과 공간이 흘러가고 끊임없는 변화가 이어졌다. 나는 영원한 그 한 점이 되어 있었다. 정말 또렷하게 그 영원성이 느껴졌고 그것은 나 자신이었다. 바로 그 한 점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동시에 느껴졌다. 

눈을 들어서 주변을 둘러봤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들, 나무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들,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감촉 등 모든 것이 영원의 한 점을 지나면서 변화를 일으켰다. 그 한 점에서 사물들의 시간성과 공간성이 생생하게 일어났다. 그때 알았다. 

"나귀가 우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물이 나귀를 보는구나"

지금까지 나는 알아차림 위주로 공부를 했다. 알아차림을 하면서 본성을 주시하는 것, 즉 회광반조를 했다. 하지만 오늘의 이 체험은 조금 다르다. 내가 영화의 스크린이나 거울이나 우물이 되는 체험을 한 것이다. 그것도 강렬하고 명확하게 체험이 되었다. 전에도 우물이 나귀를 보는 듯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표현 그대로 체험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주로 회광반조를 했는데 체험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회광반조는 보는 자를 본다, 알아차림을 알아차린다는 것으로 그것은 우물이 자신에게 비친 나귀를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그 표현은 깨달음에 대한 은유적 설명이겠거니 했는데 오늘 그것이 단지 깨달음을 말해주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체험이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한 것이다. 나는 우물(변하지 않는 순수의식)이 되어서 나귀(나뭇잎의 흔들림, 새소리, 바람의 느낌 등 모든 현상)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정말 깨달음 공부는 깊어지면 질수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공부는 자신이 깨달아진 깊이 만큼만 알 수 있는 신비이다. 깨달음 공부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요즘은 공부가 저절로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