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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불인(天地不仁)

만약 하나님이 누군가의 기도를 자의적으로 들어줄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세상은 질서가 깨어져서 흙먼지로 흩어졌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까지 그런 일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노자 5장에 이런 말이 있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이 말에 대해서 도올 김용옥 선생은 《노자가 옳았다》에서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천지불인은, 천지의 운행이나 활동,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감이나 바램과 무관하게 그 나름대로의 생성법칙과 조화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좀 야속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p. 140~141

그리고 같은 책에 왕필 주석도 담았다.

"천지는 항상 스스로 그러함에 자신을 맡긴다. 천지는 억지로 함이 없고 조작함이 없다. 그래서 천지가 생하는 만물도 스스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질서를 형성해 나간다. 그러므로 불인하다고 말한 것이다." p.142

내가 늘 생각하는 바를 도올 선생의 책을 통해서 읽으니 반갑다. 나는 기도의 긍정적인 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기도로 바꾸려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그런 기도를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기도를 해서 기도의 내용대로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하나님 스스로 어떤 의지를 보여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그런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요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떤 것도 하나님의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 질서 안에서 형성된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이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일에 간섭한다면(기도에 응답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에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는 괜찮다고 본다. 그것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많은 힘이 되고 용기를 갖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살기가 힘들고 고달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마지막 끈을 하나님께 향해서 붙잡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위로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그런 긍정적인 효과는 그 기도 자체가 하나님의 응답이 될 수 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