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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공부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진다

며칠째 비가 오는데 매일 갑천 습지길과 도솔산을 맨발로 걸으며 깨달음 공부를 하고 있다. 깨달음 공부는 별 게 없다. 본성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사는 것이다. 의식은 활짝 열려서 세상과 하나되고 눈앞의 모든 사물에 깨어서 알아차림 한다. 어떤 것에도 끄달려서 따라가지 않고 바람이 불다가 지나가듯이 그렇게 흘려버린다. 세상을 날것 그대로 바라본다. 어떠한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지더라도 생각으로 해석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놓아버린다. 하지만 분명한 알아차림이 있다. 단지 세상이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을 뿐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똑같이 그렇게 대응한다. 공부의 핵심은 세상과의 합일에도, 알아차림도 아니다. 합일된 상태에서 알아차림 하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회광반조). 다른 것 다 해도 본성을 잃어버리면 공부는 실패이다. 늘 본성 자리에서 세상 전체를 의식하며 알아차림 해야 한다. 

매일 4시간 이상 걸으며 그렇게 공부를 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깊어지는 걸 느낀다. 공부가 무척 재미있고 맨발 걷기하로 가는 시간이 무척 기다려진다. 세상 전체와 합일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진다. 물론 중간에 생각이 침투해서 깨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바로 알아차려서 다시 합일 상태로 들어간다. 세상과 합일되면 세상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된다. 몸과 마음도 세상의 일부가 되어서 알아차림 된다. 맨발로 걷다보니 땅과의 발바닥 접촉이 계속 느껴진다. 나는 내 몸이라는 생각없이 그 느낌을 알아차린다. 생각이 떠오르면 내 생각이라는 생각 없이 그냥 생각을 알아차린다. 물론 순간적으로 생각에 빠져서 끌려가기도 하는데 오래 끌려가지 않고 바로 빠져 나온다. 합일 된 상태에서 알아차림을 하면 내가 알아차리는 게 아니라 더 근원적인 변하지 않는 존재가 내 안에서 알아차림 한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것이 예전보다 더 확연하게 느껴진다. 공부가 더 깊어졌다는 걸 아는 증거가 바로 그것이다. 합일이 더 오래 유지된다는 점과 근원적 존재 느낌이 더 강해지는 그것이 공부의 깊이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상태로 계속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 날 또 한단계 더 깊어지는 견성 체험이 일어날 지 모르겠다. 언제 될 지 알 수 없지만 빨리 되면 될수록 나는 좋다.

오늘은 기온이 조금 낮았다. 영상 5도인데 비가 계속 왔고 옷도 많이 젖어서 생각보다 몸의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그런데 깨달음 공부에 심취해서 계속 맨발로 도솔산과 습지길을 배회하며 걷다보니 체온 조절이 잘 안 된 것 같았다. 콧물이 나기 시작해서 집에 왔는데도 힘들었다. 보일러를 올려서 방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공부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서 빗 속을 맨발로 걸어도 자꾸만 숲을 빠져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사방에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나만 빗소리, 물소리, 새소리, 갈대 소리를 듣고 사방에 나무와 갈대에 둘러쌓여 거의 몽환적 기분으로 사라잡혀 있는데, 의식은 또렷하고 마음에서는 잔잔한 희열감이 피어오르고, 주변 환경과 합일된 느낌 속에서 '여기가 하늘 나라구나' 싶은 편안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깨달음 공부는 처음 시작해서 깨닫기 전까지는 무척 고통스럽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꽉 막힌 것 같은 시간을 오래도록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초견성을 한 후부터는 숨통이 트인다. 뭔가 알 것 같고 자신감도 붙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예전 습성이 나타나고 공부도 잘 안 될 때가 있다. 그때는 더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시간을 잠깐 보냈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공부가 갑자기 깊어진다. 어느 정도 한 고비를 넘기면 그때부터 공부는 재미있어진다. 나는 먼저 깨달은 선배들의 영상을 많이 봐서 공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느 정도는 파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다음에는 어떤 과정으로 이어지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내 예상이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대응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스승없이 공부하는 사람치고 나름대로 옆길로 빠지지 않고 제대로 길을 가고 있다.